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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무소방원 태백산 등반 기행문
작성자
김재민
등록일
2020-01-22
조회수
785
내용
2020년 1월 20일은 ‘고진감래’라는 말이 나의 마음에 새겨진 날이었다. 그 날 내가 오르던 태백산은 유독 추웠고 또 쏟아질 듯 가팔랐지만, 그 정상에는 내 인생 최고의 설경이 있었고 후에 하루를 정리할 때엔 따뜻한 기억과 즐거운 일화들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기행문을 시작하며, 이다지도 뜻깊은 경험을 하게 해주신 남궁규 서장님과 힘든 길을 함께 해주신 이동현 반장님, 그리고 합심하여 1,566m를 정복한 홍천소방서 의무소방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기고 싶다.

나는 어릴 적부터 태백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자주 놀러갔었고 가족끼리 종종 태백산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자연스레 태백을 찾을 일이 없어졌고, 태백시와 태백산은 나에게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서장님께서 어느 날 태백산 겨울 산행을 제안하셨을 때 춥고 힘들다거나 하는 걱정은 없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태백산을 다시 찾는다는 것에 커다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바쁜 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등반일이 다가왔다. 의무소방원은 모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짐을 챙기고 7시쯤 차에 몸을 실었다. 약 3시간을 달리다보니 어느 주유소에 도착했다. 나는 당연히 주유를 하고 다시 출발하겠거니 하였는데 서장님을 필두로 우리는 주유소 뒷길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사길령과 유일사를 통해 천제단까지 오르는 등산길이었다. 처음부터 쏟아질 듯 가파른 경사에 나는 금방 숨이 차올랐다. 눈이 쌓여 발이 미끄러져 더욱 힘들었다. 20분을 그렇게 오르다, 우리는 잠시 쉬며 발에 아이젠을 찼다. 이제는 걷기 수월해지겠다는 안심도 잠시였다. 미끄러지지는 않았지만 점점 험준해지는 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산을 정복하는 데에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올라가며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중간중간 쉬어가며 먹었던 닭강정과 총떡, 그리고 막걸리가 나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 유일사에서 득도한 고양이와 함께 먹은 얼음같이 차가운 도시락마저 산해진미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였고, 그 때에 먹은 컵라면은 23세 평생 처음 경험한 기막힌 맛이 났다.

숨이 차올라 힘든 와중에 둘러봤던 풍경들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운동을 즐기지 않아 등산을 자주 하지는 않았던 나로서는 설산은 낯선 경험이었다. 평소에 보았던 눈보다 산에 쌓인 눈은 더욱 아름다웠고 도화지 위에 나무와 하늘을 그려놓은 듯 신비로웠다. 그 중에서도 천제단에서 바라본 첩첩이 쌓인 산들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눈에 남아있는듯 하다. 내가 언젠가 죽게 된다면, 그 날 올랐던 태백산의 풍경은 꼭 기억날 것 같다.
경사가 완만하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 하산길과 아이처럼 놀 수 있었던 태백산 눈축제, 그리고 홍천에 돌아와 가졌던 회식까지 하루가 조밀하게도 지나갔다. 나는 항상 등산이라고 하면 나서서 할 필요 없는 고통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1월 20일을 계기로 그 등산이 보람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또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으로 남았다. 내가 홍천소방서에 의무소방원으로 복무하는 동안 또 한 번 이런 좋은 하루를 보낼 일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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