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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작벌써 세 번째 등산이었다.
홍천소방서 의무소방원으로서 생활하면서 어느덧 세 번째 산행이었다. 첫 번째는 계방산, 두 번째는 백우산 그리고 이번에는 태백산이었다. 홍천소방서로 오기 전까지는 등산을 즐겨하지 않았다.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고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티비 속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앞선 두 번의 산행을 통해서 등산의 다른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었다. 산에 간다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손이 많이가는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힘든 등산길도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다. 과거엔 등산을 간다고 하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고 되도록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앞선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등산의 맛을 조금 알았던 터인지. 이번 태백산 등산 전 날에는 설레어서 잠도 제대로 자질 못했다. 은근히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당일 날에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20년 1월 20일 등산 당일이 되자 우리 8명은 차에 몸을 실었다. 정원이 비록 11인승이었지만 다들 태백산의 추위에 지레 겁먹어서 그런지 너무 두껍게 입고 나오는 바람에 공간이 되려 부족했다. 그렇게 2시간 반을 굽이진 태백의 도로를 꼬박 달려서 태백산 국립공원에서 살짝 떨어진 뒷길에 주차를 하였다. 산행에 앞서서 긴장한 몸을 놀라지 않게 풀어주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우리는 묵묵하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태백(太白)산은 한자 그대로 눈이 많은 산이어서 굉장히 미끄러웠고 산이 우릴 허락하지 않는지 바람이 칼날같이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산행 중간 중간 남궁규 서장님께서 태백산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거나 나무 하나하나에 대해 유래와 뜻을 알려주셔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힘들면,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먹은 총떡과 닭강정, 그리고 막걸리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맛이였다. 비록 태백산의 추운 날씨에 버티지 못해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들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시 산에 오르게끔 만드는 힘이 돼 주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도착한 태백산 정상은 눈에 보이는 모든 면이 하얗게 뒤덮여져 버린 설산이었다. 모든 나무와 풀들은 눈으로 한 껏 치장을 하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눈발을 휘날리며 장관을 연출 하였다. 왜 사람들이 힘들게 다시 내려올 산을 오르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그림과 같은 풍경을 뒤로 하고 우리는 하산하는 길에 주린 배를 채우기로 하였다. 비록 다 식어 딱딱해져버린 도시락과 면이 겨우 풀어질 듯 말 듯한 컵라면이었지만 뱃속의 허기와 흐드러지게 핀 눈꽃을 반찬 삼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보았던 도시락 중에서 가장 차가웠지만 가장 맛있게 먹은 도시락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그렇게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만담을 꽃피우며 하산을 할 수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태백산 등반은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홍천소방서 주변에서 회식을 한 후에야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2년 남짓의 군 생활에 있어서 가장 울림이 있는 경험이었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만들어주신 남궁규 서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등산이 즐겁다. 보람차고, 행복하다. 나에게 등산은 그저 고단한 운동이 아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로 바뀌었다. 등산의 의미를 알게 해주신 남궁규 서장님께 다시금 감사하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에 다시 한번 설레어서 잠 못드는 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